|
|
| |
|
| |
|
| |
| |
| 순종의 거울- 박종명 (35기 사법연수생) |
순종의 거울(목마르거든 11월호)
박종명(35기 사법연수생)
나는 결혼한 지 1년 3개월 된 스물아홉 살의 아저씨다. 순종적인 A형 여자인 아내와 재미있고 활발한 O형 남자인 나는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사랑의 서약을 하였다. 주위에서는 우리부부를 두고 다들 부러워했다. 우리부부는 평생 가도 부부싸움 한번 안 할 것 같다며 질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급기야 목사, 심리학박사에게까지 찾아가서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사실 나의 아내는 보기 드물게 헌신적인 사람이다. 결혼하고부터 지금까지 아침상 차리기를 거른 날이 없다. 몸이 아프거나 심하게 다툰 날도 새벽에 새로 밥을 짓고 국도 끓이며, 흰색 셔츠를 매일 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멀리 지방에 사시는 시부모에게 매일 전화 드리고, 혼자서 시댁에 내려가 며칠씩 지내기도 한다. 휴가 때면 시댁에 가자고 남편에게 부탁하는 며느리가 또 있을까.
나 역시 스스로 모범적인 남편이라 자부한다. 폭탄주 문화의 본산인 사법연수원에 다니면서도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거의 모든 자리에 아내와 함께 간다. 예술가 기질이 있는 나는 아내를 위한 음악도 만들고, 아내를 모델로 수십 점의 그림도 그렸다. 26년간 재미없이 착하게 살아온 아내를 위해 온갖 이벤트를 준비하였고, 동네 떡볶이 집부터 페루, 아르헨티나 앞바다까지 함께 다녔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거의 매일 다투었다. 더 이상한 것은 이렇다 할주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참을 싸우다 보면 우리가 무엇을 두고, 왜 싸우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의 불만은 아내가 나에게 마음으로는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가 나를 판단하려고 하고,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나는 아내에게 이런 불만을 이야기하였고, 아내를 가르치려고 시도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에베소서 5:22)’는 성경구절도 들먹였다.
아내는 이런 내가 억압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아내는 나에게 헌신하였지만, 나를 마음으로 존경하지는 못했다. 한번은 자신은 남편이 잘하든 못하든 순종하는 아내가 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서로 사랑하는 우리는 너무나 힘들었다. 더 떨어질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지쳤을 때, 나는 기도를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기적은 의외로 금방 찾아왔다. 기도를 시작하면서 아내만을 보던 나의 눈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내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뜻으로만 새겼던 에베소서5장22절이 달리 보였다. '아내:남편 = 남편:주님'이라면, 아내는 내가 주께 하듯이 나를 대할 것이고, 나는 주께서 내게 하신 것처럼 아내를 대해야 한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지 못했고, 주께 순종하지 못했던 나는 부끄러워졌다. 더 이상 내가 주께 하듯 나에게 복종(?)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전에 아내는 나에게 복종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지금 아내는 내가 주께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나는 다시 성경책을 붙잡게 되었고,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나의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고, 조금씩 변해갔다. 토요일 새벽 내가 청계산에 기도하러 나갈 때면, 아내는 마치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시는 예수님 보듯 존경의 눈길로 날 바라본다. 으쓱한 기분으로 기도원에 가지만 정작 절반 이상은 꿈나라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나는 이런 사실을 아내가 알까 걱정이다.
우리부부는 기쁠 때나 슬플 때, 화가 날 때도 함께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는, 아내의 얼굴에는, 우리 가정에는 행복과 평안이 찾아왔다.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