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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르거든 제237호 - "들어주기" / 김건수 변호사
들어 주기
김건수/ 변호사

남의 말을 인내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어 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업무에서 경청은 필요하지만, 특히 법률 사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성실한 마음으로 잘 들어 주어야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극단적 결과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에 지방 도시에서 단독 판사를 할 때의 일이다. 내가 맡은 사건은 억울하게 사망했다는 사람의 유가족이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부인들끼리의 싸움에 옆집 남편이 가세하여 피해자를 때렸다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었다. 수사한 검사는 옆집 부인은 기소하였지만, 그 남편이 피해자를 때렸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어 남편에 대해서는 혐의가 없다고 결정하였다.
피해자는 검찰 결정에 불복하고 항고 기각 등으로 옆집 남편을 처벌할 수 없게 되자, 부부를 피고로 민사 소송으로 치료비와 위자료 등을 청구하였다. 당시의 담당 판사로서는 옆집 부인은 직접 때린 사람이므로 손해배상을 해야 하겠지만, 그 남편은 폭행에 대해 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받았으므로 손해배상을 인정하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담당 판사가 남편에 대해서는 싸움을 말리는 척하며 때렸을지도 모르지만, 증거가 없으므로 소를 취하하라고 권고하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로서는 검찰에서 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한 것도 억울한데, 돈이 있는 남편에 대해 취하하면 부인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 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 또 혹시 옆집 남편이 실제로는 때려서 맞았는데 소 취하를 하면 너무 억울하다고 여겼을 듯도 하다.
결국에는 담당 판사가 옆집 남편에 대해서는 청구를 기각하는 패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피해자가 분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의기소침해 있는데 여기에 불을 붙이는 일이 일어났다. 옆집 여자가 피해자에게 “야, 이 X아, 꼴좋다. 네가 그렇게 억울하면 법원에 가서 자살이나 하든가.”라고 감정을 격하게 자극한 것이다. 피해자는 그 길로 법원 앞마당으로 와서 억울하다며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하였다.
자살한 피해자의 유가족이 옆집 부인을 상대로 새롭게 제기한 소송을 맡게 되면서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게 되었다. 참 답답한 일이었다. 옆집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폭행 사건을 넘어 앞의 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고 피해자가 법원 마당에서 자살하였으니 그 유가족의 마음이 오죽하랴 싶었다.
기존의 형사, 민사 사건 기록을 전부 살펴보고 정말 조심스럽게 재판을 진행하였다. 재판시간을 최대한 할애하여 유족들의 억울한 얘기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듣고, 가해자 측의 얘기도 들으면서 감정을 해소할 시간을 가졌다. 증거가 다 나온 다음에도 급하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은 가해자가 일부 배상하는 조정으로 끝을 맺어 더 이상의 분쟁은 없게 되었다.
옆집 남편에 대한 혐의없음이라는 검찰의 결정이 맞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시에 담당 검사가 좀 더 들어주고 천천히 설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그 남편에 대한 민사소송에서도 당시 담당 판사가 좀 더 피해자의 얘기를 들어 주었더라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악화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당시의 검사나 판사 모두 최선을 다해 들어 주었어도, 검찰의 처분 결과나 판사의 선고 결과가 변경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비극적 결말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여겨진다. 아니, 처음부터 이웃끼리 서로의 말을 조금만 더 잘 들어주었다면 싸움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말을 듣고 판단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특히 인내심을 가지고 관계되는 사람들의 말을 자세히 들어 주는 것이 주님 주신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주님의 마음으로 정말 미세한 얘기라도 자세히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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